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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 황

본당명 천주교 서울대교구 마천동성당
설립년원일 1967년 8월 12일
주보성인 성 아우구스티노(Augustine)
주 소 서울특별시 송파구 거마로 24길 11
관할구역 마천1. 2동 전 지역
지역.구역.반 3지역 12구역 59반


약 사

1960년대 서울시가 무허가 판자촌을 정비하기 위하여 광주군(현재 성남시)에 철거민을 위한 이주 정착지를 조성하고 철거민들을 이주시키자, 이주한 신자들이 하나둘씩 모여 자연스럽게 공동체가 형되어 1967년 4월 거여동공소(회장: 이심원 시메온)가 설립되었다. 공소가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한때는 천호동성당 김대성 바오로 신부사목시기인 1967년 7월 27일 세 번째 공소회장에 임명된 이봉림(요한)형제 때부터이다. 공동체는 첫 사업으로 주님께 찬미와 감사를 드리고 공동체의 소원인 본당신설과 성전건립을 청원하기 위하여 새벽기도를 드리기로 결정하고, 1969년 8월 12일부터 교우들은 아침 4시 강당에 모여 새벽기도를 바치기 시작하였고, 이 새벽기도는 1971년 7월 성전이 준공되기까지 계속 되었다.

이렇게 활발한 활동으로 인하여 차츰 교우들이 늘어나자 공소구역을 7개 반으로 나누어 반장을 임명하고, 반장들로 하여금 교우 가정을 방문 전ㆍ출입 교우들을 파악하고 병자와 냉담교우 및 조당교우를 찾아 권면활동을 하도록 하기도 하고, 헌미운동을 통하여 이웃과 나누고 신심양양과 선교에도 힘을 기울였다. 한편 공소회장을 비롯한 대표 교우들은 천호동성당 김대성 바오로 신부를 찾아가 성전건립과 본당신설에 대하여 논의하고, 교구장께 본당신설과 성전건립을 요청하는 호소문도 발송하였다.

이에 교구에서는 경갑룡 당시 경리담당 신부를 비롯하여 교구장이신 김수환 추기경까지 나서서 도움을 주셨는데,
특히 교구장께서는 혜화동성당에 서한을 보내 거여동 공소의 딱한 사정을 이야기고 혜화동성당에서 거여동공소 부지구입을 맡아 달라고 하자, 혜화동성당 운영위원회는 교리실 확충, 마당포장 등 본당의 공사가 예정되었음에도 마천동 92.93 번지의 논 1.143평을 성전부지로 구입해 주었다. 1970년 봄부터는 매입된 성전부지가 논으로 건물을 짓기 위해서는 매립하여야 하였기에 교우들이 합심하여 매립작업에 앞장섰다. 교우들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매립이 마무리되자 매립된 빈터에 봉천동성당에서 보내준 천막을 세우고, 거여동에 마련된 공소를 마천동 성전부지로 옮겼다.

1970년 8월 30일 김수환 추기경께서 교우들의 이런 노력을 치하하기 위하여 공소를 방문하셨다. 김수환 추기경의 공소방문 소식을 들은 교우들은 마을입구까지 나와 추기경 일행을 맞이하였는데, 이날 거여동공소 교우뿐 아니라 오금동과 평화촌공소 교우들도 기쁨을 함께 하였다. 한편 거여동공소의 사목권이 성 골롬반회로 결정됨에 따라 1970년 9월 13일경 천호동성당 조인환 베드로 신부가 마지막 미사를 거행하였다. 본당설립이 다가오자 교우들은 본당설립기금 납부에 힘썼을 뿐 아니라, 부인회에서는 성전건립기금의 조성을 위해 주일마다 피곤함도 잊고 기쁨 속에서 타 성당을 방문하여 수건 및 기타 일용품을 판매하여 기금조성에 힘을 보탰다. 이처럼 성전 신축공사가 순조로이 진행되어 1971년 9월 5일 신축 성전에서 성 골롬바노회 유 신부의 집전으로 첫 미사가 집전 되었고, 9월 17일 거여동 공소가 거여동성당으로 승격되어 초대 주임신부로 성 골롬바노회 부 지부장 신부로 있던 명 프란치스코 신부가 부임하였다. 새로 부임한 초대 주임 명 프란치스코 신부는 안정적인 본당을 운영하기 위하여 초대 회장에 정문호 가롤로 형제를, 전교 회장에는 이전부터 봉사하던 이승호 레지나 자매를 재임명하며 본당 사목의 기틀을 마련하였고, 1971년 12월 제2대 주임신부로 부임한 하 요한 신부가 서울대교구 행정기구 규정에 의하여 1반장 정혜영 소화 데레사, 3반장 최재완 마태오, 4반장 서춘자 헬레나, 5반장 이종숙 아텔라, 6반장 이이남 루시아, 7반장 이계순 비리시다, 8반장 김학희 유리안나, 9반장 김창숙 안젤라를 임명하고 첫 반장단 회의를 시작으로 이후 매월 1회 반장단 회합을 하도록 함으로서 실질적으로는 사목위원으로서의 기능을 발휘하도록 하였다. 이로써 본당은 발전의 길로 들어섰고 하 신부는 매 주일 오후 1시에 평화촌공소에서, 매월 첫 토요일 오전 10시 오금동공소에서 미사를 드렸으며, 이때 어린이와 어른들의 세례식도 행하였다.

1973년 10월 21일 본당설립 후 처음으로 김수환 추기경의 견진미사 집전으로 165명에게 견진성사가 주어졌다. 한편 공소시절 기성회 회장으로 있었던 채정봉 베네딕토 형제가 성모상과 조경 사업에 필요한 비용부담을 해 주어서 성모상과 주변 조경을 완성하였다. 제 3대 본당 신부인 조 파트리시오 신부가 부임 하여, 신자 재교육의 한 방법으로 매 토요일 환등기를 사용하여“우리의 생활”이라는 슬라이드를 보여주었으며 중? 고등학생들의 교리에도 환등기를 활용 교리교육에 많은 효과를 거두었다. 또한 합동 혼인성사를 거행하여 많은 교우들이 조당을 풀었으며, 매월 합동 고백성사를 줌으로서 영성체자 수가 크게 늘어났고 특히 젊은 층에서 이를 환영하였다. 또 오금동공소가 강당이 없어 공소회장 집에서 공소예절을 하고 있음을 안타까워하시며 강당을 지을 대지를 교구에서 마련해 주도록 청하여, 교구지원 및 본당과 공소교우들의 성금으로 12평의 강당을 마련하여 주기도 하였다. 조 파트리시오 신부는 재임기간 동안 본당교우 가정은 문론 평화촌, 오금동공소 교우가정까지 집집마다 방문하여 위로와 격려를 아끼지 않았고 바른 신앙생활을 하도록 권고해 주기도 했다.

제4대 주임신부로 부임한 구 요셉 신부 역시 사제관을 개방하여 본당의 발전과 운영은 “교우들의 손으로”라는 표어를 내걸어 다시 교우들의 잠을 깨우기 시작하였다. 부인들의 신심 단체인 성모회를 재정비하고 본당의 중추적 역할을 할 청? 장년들의 모임인 성 요셉회를 설립하여, 회장에 김정기 야고버, 부회장에 김영철 델피아 형제를 선출하였다. 성 요셉회는 신심단체로서의 역할 뿐 아니라 사목위원회가 구성되기 전까지 실질적인 사목위원으로서의 역할을 담당 할 수 있도록 회칙을 정하고, 평신도 사도직의 사명감을 가지고 교회 사업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였다.
1978년 11월 25, 26일 2일간 전 교우대상으로 피정을 실시하였는데, 평신도 사도로서 한마음 한뜻이 되어 서로 일치를 이루고, 주님의 식탁에 모여 기도와 성사생활을 할 것을 강조한 이 피정을 통하여 교우들이 신앙생활을 쇄신하는 데에 큰 몫을 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 피정을 계기로 1979년 2월 23일 사목위원회을 조직하고, 위원장에 김정기 야고버, 부위원장에 김영철 텔피노를 임명하였다. 사목위원회가 발족되자 사목위원회의 역할을 하던 성 요셉회는 본연의 신심단체로 회칙을 바꾸었다. 이렇게 의욕에 찬 활동이 막 시작되었을 때 구 요셉 신부가 갑작스런 병원에 입원하게 되어 본당 교우들로서는 큰 슬픔이 아닐 수 없었다. 다행히 두 주일 후 퇴원하여 소속 수도회에서 요양하며 사목을 계속하였고, 1975년 4월 15일 예수부활대축일에 건강한 모습으로 본당에 복귀 미사를 집전 하였으며, 이날부터 본당 주보 창간호가 발행되었다

1981년 1월 4일 교구지침에 의하여 사목위원회를 사목협의회로 명칭을 변경하였고, 81년 3월 1일 본당 명칭도 거여동성당에서 소재지 지명을 따라 마천동 본당으로 개칭하였다. 한편 새 성전건립 위원회는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가 1980년 2월 24일 성전건립 기도문을 작성 배부하고 매일 바치도록 하였다. 새 성전은 연건평은 457.9평으로 지하층에 교리실, 보일러실, 창고, 1층을 사제관, 소강당, 회의실, 본당사무실, 성물판매소, 만남의 방, 화장실로, 2층을 성전과 성가대석으로 설계하였다. 총 예상 공사비 약 2억 5천만원정도 소요될 것으로 예상하였으나, 새 성전건립 재정 4천 팔백 4십만원, 성 골롬바노회 차입 4천 오백만원, 교구지원 1천만원, 구의동 본당 원조 2백만원 등을 합하여 1억 5백 4십만원으로 반도 안 되는 실정이었다. 본당의 실정을 알게 된 경갑룡 주교는 장위동 본당과 자매 본당으로 인연을 맺어 주었고, 양 본당 신부가 본당을 교환하여 주일미사를 봉헌하는 등의 계기로 장위동성당에서 새 성전건립기금 3천만원을 도와주기로 약속하였다.

새 성전 설계는 도성그룹 대표 박재환 도미니꼬사비오 형제가, 시공은 신라종합건설의 신상길 가시아스 형제 맡았다. 어렵고 순탄치 못한 조건과 환경 속에 또 터무니없이 부족한 자금을 가지고 주님의 새 성전을 건립코자하는 대역사는 1981년 8월 9일 김수환 추기경과 함께 기공식을 가짐으로써 시작되었다. 공소 때부터 오늘에 있기까지 힘써주신 김수환 추기경, 경갑룡 주교, 그리고 혜화동성당, 봉천동성당, 구의동성당, 장위동성당 등 도움에 손길이 없었다면 오늘이 있지 않았을 것이다.
* 참조문언: 한국교회사연구소 자료, 송파구 역사기록관 자료, 두산백과 사전